심무도(心武道)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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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무도는 일반 대중들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이 무예가 대중화와 상업화에 적합하게끔 탈바꿈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비록 심무도는 사회적으로 일반인의 인식속에 폭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대신 그만큼 때묻지 않은 투명함과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이용원 원장이 스승인 김창석 선생을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시절(1967년), 당시는 합기도 도장, 유도 도장 등 일본 무술 도장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고, 태권도도 아직 정비가 다 되지 않아 '당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워 졌을 때이다.

 어느 날 이용원 원장은 한 친구에게 이상한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슨 운동을 하는 곳인데, 사람도 별로 없고 버선을 신고 운동한다는 것이다. 친구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 장소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몇 달 후 이용원 원장은 우체국을 다녀오는 길에 한 허름한 건물에서 친구가 말했던 도장을 찾아내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스승 김창석 선생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나이가 어리다 하여 입문을 반대하던 김창석 선생은 이용원 원장의 신상명세와 통신표(성적표)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제자로 거두어들인다. 심무도의 유래를 묻는 이원장에게 스승인 남강 김창석 선생은 이 무예가 우리 무예이면 그만이지 구태여 내력을 따져서 뭐하겠는냐는 태도로 일관하였고, 이원장 또한 이 무예가 우리의 몸짓임을 추호의 의심없이 믿었기에 수련 외에 무예의 유래나 역사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남강선생은 고향인 대구 달성에서 아홉 살 어린시절에(1951년) 노스승을 만났고 어린애였던 선생의 남다른 재질을 아껴 노스승은 김창석씨가 20대에 이르기까지 비전의 무예를 전수시킨 것이다. 그러나 노스승 서벽선생은 무예의 내력은 물론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조차 자세히 말하기를 꺼렸다. 남강선생 또한 너무 어린 시절 무예를 물려받다 보니 무예의 내력과 계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다. '심무도'라는 이 무예의 이름도 이용원 원장이 "그래도 뭔가 이름이 있어야 될 것 같아" 스승인 남강선생과 상의하여 지은 것이 1976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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